- 조너선 아이브 , 존 갈리아노, 알렉 이시고니스, 알렉산더 맥퀸
디자인 인재의 산실 영국은 산업계와 패션계를 주름잡는 최고 디자이너들을 많이 배출했다. 애플(Apple)의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 디자인담당 수석부사장,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수석디자이너 등이 영국 출신이다.
애플 부활의 주역, 조너선 아이브
1990 년대 IBM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걷던 애플을 부활시킨 제품은 속이 비치는 누드디자인으로 유명한 아이맥(iMac) 컴퓨터와 미국 MP3시장의 70%를 장악한 아이팟(iPod)이다. 이 두 제품의 디자인은 모두 영국 출신 디자이너인 조너선 아이브(40)의 손에서 탄생했다. 딸기·블루베리·포도·귤·라임(녹색) 등 다섯가지 색깔의 투명한 아이맥은 검정·회색·흰색 등 무채색 일색이던 컴퓨터의 색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면서, 컬러마케팅(color marketing)을 유행시켰다. 흑백(黑白)의 단순명료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아이팟은 제품 외관에 나사부품이나 이음매 등 군더더기를 없앤 극단적인 단순함을 추구하는 아이브 디자인의 결정체다. 아이브는 2004년 BBC방송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있는 문화예술인’ 1위에 올랐다. 2위는 해리포터의 저자인 조앤 롤링이었다.
크리스찬 디올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
패션디자인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인물. 1960년 영국령 지브롤터(Gibraltar)에서 태어나 영국 세인트마틴스(Saint Martins) 디자인대학을 졸업한 패션디자이너 존 갈리아노(47)는 1987년, 1994년, 1995년 등 3차례에 걸쳐 영국의 ‘올해의 패션디자이너’로 선정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1995년 세계 최대 패션·명품업체인 LVMH(루이뷔통모에헤네시) 계열의 지방시(Givenchy)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됐다가, 다음해인 1996년 같은 계열의 크리스찬디올 수석 디자이너로 옮겼다. 프랑스 회사인 LVMH에서 영국인으론 첫 수석 디자이너가 된 갈리아노의 작품은 “1960년 이브 생 로랑이 디올을 떠난 이후 가장 훌륭한 옷”이란 격찬을 받았다.
미니의 디자이너, 알렉 이시고니스
영 국 여왕과 비틀스 멤버 등 왕족·스타 뿐 아니라 일반 서민층도 한 대씩은 보유했다는 세계적 명차(名車) ‘미니’는 차량 설계자이자 디자이너였던 알렉 이시고니스(Alec Issigonis, 1906~1988)의 소신(所信)이 구현된 차다. 이시고니스는 독창성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절대 베끼지 말고 혁신하라(never copy the opposition and always innovate)”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시고니스는 1956년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봉쇄로 원유값이 급등하자 기름이 적게 드는 소형차 개발에 착수, 1959년 근로자계층도 구입할 수 있는 자동차인 미니를 내놓았다. ‘작은 차체에 넓은 실내(small outside, bigger inside)’를 모토로 공간 효율을 극대화한 미니는 이후 실용적인 자동차 설계의 모범이 됐다.
패션계의 앙팡테리블, 알렉산더 맥퀸
존 갈리아노의 뒤를 잇는 영국 디자이너. 1996년 크리스찬디올로 옮긴 존 갈리아노의 뒤를 이어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가 됐다. 유서깊은 명품업체 지방시가 맥퀸(38)을 선택한 것은 그의 ‘뛰어난 크리에이티브 능력과 테크니컬한 솜씨’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는 1997년 갈리아노와 공동으로 영국 ‘올해의 패션디자이너’로 선정된 것을 비롯, 1996년, 2001년, 2003년 등 총 4차례 이 상을 받으면서 패션 디자인계의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로 떠올랐다. 그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 연약함과 강건함, 유연함과 엄격함 등 대조적인 요소들을 조화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나지홍 경제부 기자 jh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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