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디자인의 혁신성은 본질에 대한 집요한 탐색에서 온다
한 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누구냐는 설문을 한다면 누가 뽑힐까요? 실제로 2004년에 월간 <디자인>이 그런 설문을 했는데, 앙드레 김 선생이 뽑힌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픽 디자이너나 제품 디자이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 실 이런 설문 자체가 어리석은지도 모르지요. 그런데도 또 다른 어린석은 질문을 했는데, 어느 나라가 디자인을 제일 잘하느냐는 것이었죠. 이 설문에 대해서 1위는 프랑스, 2위는 이탈리아, 3위 일본, 4위 독일, 5위 미국 그리고 영국이 6위였습니다.
월 간 <디자인> 3월호 특집이 바로 이 설문조사에서 6위를 차지한 영국 디자인에 관한 것입니다. 왜 뜬금없이 영국 디자인이냐고요? 잠시 그 의문에 답하기에 앞서 우리 독자들에게 왜 영국 디자인은 6위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는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영국에 출장을 가서 영국 디자이너들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왜 영국 디자인은 실제 실력보다 낮게 평가받는가? 크리스 우드라는 디자이너가 대답했습니다. "영국이 잘하는 분야는 대중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 중들에게 가장 친근한 디자인은 바로 패션입니다. 세계 최고의 패션 명품들은 대부분 프랑스나 이탈리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세계 최고의 디자인 강국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앙드레 김이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그런데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디자인 회사와 함께 일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글로벌 기업이 유럽 시장을 겨냥해 외국 디자이너에게 외주를 줄 경우 거의 대부분이 영국 회사에 맡깁니다.
잘 아시다시피 영국은 과거 세계 최고의 제조업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최고의 디자인 수출국으로 바뀌었습니다. 영국의 디자이너들은 자국 제조업의 쇠퇴로 국내 수요로만은 먹고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디자인이라는 서비스 상품을 반드시 바다 건너 외국에 팔아야 할 운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실력이 형편없다면 누가 그걸 사주겠습니까. 전 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영국의 디자인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애 플 같은 기업은 아예 영국 디자이너를 수석 디자이너로 채용했지요. 아이맥부터 아이팟까지 애플의 디자인 혁명을 주도한 조너선 아이브 말입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패션과 가구 산업에서도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매퀸, 재스퍼 모리슨, 톰 딕슨 같은 영국 디자이너들의 활약이 대단합니다. 건축 분야의 경우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와 노먼 포스터, 윌 알솝의 활약은 정말 누부십니다. 이들이 디자인한 건축물들은 정말 해가 지지 않을 정도로 전 세계에 널려 있습니다.
디자인으로 이름난 브랜드 가운데 영국 브랜드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많은 브랜드 속에 영국의 디자인이 숨어 있습니다. 그들이 영국의 디자이너를 선호하는 이유는 영국의 디자이너들은 무엇보다 혁신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혁신성은 본질에 대한 집요한 탐색에서 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스타일이 아닌 새로운 개념이나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리처드 로저스와 노먼 포스터가 시작한 하이테크 건축, 펑크 패션, 조너선 아이브가 일련의 애플 제품을 통해 보여준 단순함의 미학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또 하나는 영국의 디자인은 강한 팀워크로 탄생한다는 사실입니다. 위대한 천재가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서 큰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데 강합니다.
패션이나 가구와 달리 더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 디자인에서는 이런 팀워크가 아주 중요한데, 영국이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필림 스탁처럼 쇼맨십 강한 슈퍼스타는 없지만 팀워크와 시스템으로 실속을 차린다고 할까요. 우리나라에서 순위는 6위밖에 안 되지만 말이죠. '소리없이 강하다'. 이 카피야말로 영국 디자인에 어울리는 듯합니다. 그런데 우리 디자인에 바로 이 점이 부족해 보입니다. 본질에 대한 탐구, 왜 그런 디자인이 좋은지에 대한 의문, 스타일이 아닌 구조를 바꾸는 혁신, 리서치, 팀워크 같은 것들 말입니다. 감각적인 디자인이라면, 한국은 이미 디자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아직 2% 부족한 것이 있다면, 위에서 열거한 그런 것들이죠.
글: 김신, http://healtheworld.tistory.com/entry
Sunday, 27 January 2008
영국 디자인의 혁신성
Labels: UK design
Subscribe to:
Post Comments (Atom)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