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27 January 2008

Creative UK


UK 디자인 유쾌한 도전


‘시(See) 디자인’ ‘H 스튜디오’, ‘파케이드 인터내셔널’,…. 과거 노동자들과 재고로 가득찼던 건물들은 이제 제품디자인·건축디자인·인테리어장비·패션디자이너 작업실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일본 도쿄(東京)의 특이한 미술품을 모아 놓은 ‘월드디자인 라바토리’ 앞 거리에는 휴일이면 화가들이 몰려나와 길거리 장터를 꾸미고, 다양한 전시회를 구경하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 지역엔 디자인컨설팅 회사만 500 여 개에 이른다. 지역은 어느새 거미줄처럼 촘촘히 짜인 디자이너들의 거대 네트워킹 장소가 됐다. 디자이너들과 패션계 인사들을 ‘따라 들어온’ 각종 레스토랑들과 선술집은 초저녁부터 개성 넘치는 업계 사람들로 붐볐다. 이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리처드 테일러는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디자이너들이 각종 디자인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를 디자인해 ‘디자인 강국’ 부활

‘빈촌’ 에서 ‘디자인클러스트’로 화려하게 탈바꿈한 클러큰웰의 변신은 영국 정부의 ‘창조적 영국(Creative UK)’ 캠페인이 가져온 성공의 작은 예일 뿐이다. 1997년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는 ‘병든 영국’에 디자인을 앞세운 개혁프로그램을 이식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에 디자인이 자리잡고 있다.

개혁 아이디어는 ‘괴짜’ 의원에게서 나왔다. 영국 의원으로서는 최초로 자신이 동성 연애자임을 공식석상에서 밝히고, 관광산업부를 이끌어 온 크리스 스미스(Smith). 본래 예술계 인사들과 긴밀한 친분 관계를 유지해 왔던 그는,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 분야에 대해 긴밀한 조사를 벌인다.

특히 그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런던에만 1만 개가 넘는 ‘디자인 컨설팅’ 회사들이었다. 이들은 자생적으로 자라나 아이디어 하나로 30억 파운드가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무언가 ‘거대한 혁명’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디자인은 어느새 창조와 혁신의 고리를 보다 탄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만들고, 싱싱한 아이디어들을 매력적인 제안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었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한 영국 정부는 ‘창조적 영국’이라는 구호로 영국을 새롭게 단장했다. 1996년엔 디자인과 기술(D&T)을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해 11살 때부터 배우도록 했다. 문화미디어스포츠부를 새롭게 만들고 크리스 스미스 의원을 초대 장관으로 임명했다. 총리 관저 다우닝가엔 존 갈리아노, 조너선 아이브와 같은 디자이너들이 줄지어 초대됐다.

영국 디자인에 대한 해외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면서, 무역부문 정책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영국무역투자청(UKTI)엔 아예 창조산업만 전담하는 팀(Creative Industries Team)이 따로 있다. 런던에 5명, 전 세계적으로 25명의 ‘요원’들이 이 분야를 담당한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200여명의 디자인 업계 전문가들을 자문단으로 모셨다. 국제적 디자인 트렌드를 전망하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시장 진출 기회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게 이들의 주된 임무다.

이러한 노력으로 영국은 명실상부한 디자인 강국으로 성장했다. 디자인 산업을 포함한 창조 산업은 영국의 십분의 일을 ‘먹여 살리고’ 있다. 디자인 업계 종사자만 18만5000명이고 이들은 지난해 116억 파운드의 매출을 올렸다. 삼성·닛산·야마하·포드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디자인연구소들이 런던에 줄줄이 문을 열었다. 일자리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1995년부터 2002년 사이, 런던의 디자인 관련 일자리 증가율은 95%로 7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유럽에서 활동중인 디자이너의 30%, 미국 디자인 컨설팅 회사 대표들 중 70%가 영국 출신이다.

‘만국공통의 언어’라고 불리는 디자인. 21세기의 격전무대인 이 디자인 경쟁에서 영국은 정부 주도로 선두로 나선 독특한 비즈니스 국가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창조와 혁신의 연결고리, 디자인

영 국이 디자인의 선두 주자로 치고 나가는 데는 정부의 정책 말고도 ‘다문화적 환경’을 꼽을 수 있다. 도시 공학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마크 뮬러(Muller)는 “이탈리아 디자인은 가슴으로, 독일 디자인은 머리로, 영국 디자인은 ‘머리와 가슴으로 만든다’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모든 면모를 두루 갖출 수 있는 토양이 있다는 게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의 다문화적 환경이 감성과 판단력을 배양하는 대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의 문화가 결합하는 현장은 런던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런던에서 사용되는 ‘공식 언어(official language)’는 300개(런던투자청 통계). 런던에서 공식 언어자격이 주어지려면, 적어도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1만 명을 넘어야 한다. 런던 지도 곳곳엔 50여 개의 ‘민족 타운’이 표시되어 있다. 런던 디자이너들은 이 도시를 ‘창조적 혼합체(creative mix)’라 부른다.

런던투자진흥청 창조산업 담당 마크 하드윅(Hardwick)은 “다양한 시각을 어렸을 때부터 나누며 문화적인 저변을 보다 넓게 가져갈 수 있다”며 “세계적으로 다양한 인종들이 모이기 때문에 세계화 시대에 특히 소비자 가전 디자인 쪽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영국 의 젊은 인재들은 디자인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제품디자이너 데이비드 피셔(Fisher)는 “영국 어린이들은 회계사·변호사·은행가만큼이나 디자이너가 되길 동경한다”고 설명했다. 디자인 학위를 따는 학생들의 수는 1996년과 2004년 사이 40%나 증가했다. 석사 학위 소지자는 71%나 늘었다. 영국왕립미술학교, 세인트마틴스 등 디자인 ‘스타 대학’들엔 해마다 1 만 명에 가까운 해외 신입생들이 몰린다.

디자인 경쟁에서 어깨를 한 뼘 앞으로 더 내밀려는 국가들의 글로벌 싸움은 치열하다. 중앙정부 주도로 앞서 나가는 영국 옆에서는 지역 중심의 디자인 정책을 펴는 프랑스, 산업 드라이브 정책으로 디자인을 중심축에 놓은 핀란드, ‘신 일본양식’을 외치며 일본이 쟁패하고, 높은 부가가치에 골몰하는 중국 등이 물량을 퍼부으며 쫓고 있다.

‘왜 디자인인가’라는 물음에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로버트 헤이즈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15년 전 기업들은 가격경쟁을 벌였다. 오늘날에는 품질 경쟁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디자인경쟁이 될 것이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디자인 중시 현상을 기술의 사이클로 설명한다. “신기술의 참신성이 사라지고 나면, 제품은 ‘하이터치’를 통해 차별화된다.”



런던=김현진 산업부 기자 bor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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